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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쫑긋 세우고서 커다란 눈으로 조용히 정적을 응시하는 사슴을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울음을 들어준 적은 없다.
멀찍이 바라보니 땅과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랜 세월 땅을 딛고 서서 물들어버렸나, 온통 누렇다.
해가 기울 때마다 탑의 방향이 바뀐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면 어느새 주위에 발자국이 그득하다.
미로를 달리는 앨리스처럼, 그렇게 신비로운 추억을 선사해 줄 곳. 한 걸음 한 걸음 더디게, 기억을 새기며 걷는다.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길을 만든 까닭은 너와 함께 팔짱을 끼고 지나갈 수 있도록 베푼 배려.
빛깔 맑은 것들이 맑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빈 벽이 물든 듯 일렁거리고 있다.
아주 오래 된, 그러나 선명한 자취. 온전히 제 몸으로 만든 흔적이란 왜 이리도 아련한 것인지.
뚜껑을 열기도 힘겨워 보이는 거대한 솥에 윤이 난다. 펄펄 끓었을 과거는 어디에 가고 텅 빈 채 남아 가마솥이라 불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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