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경상도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시골아이가 서울깍쟁이 여학생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멋들어진 사투리를 쓰고 무뚝뚝한 말투와 행동 속에 배어 있는 세심함이랄까?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난 첫 경상도 여행길이다. 포항에 있는 친구에게 내가 내려가니 환영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으라고 큰소리를 쳤다.
버스에 몸을 싣고 유유히 안내팜플랫을 열어보고 있는데 친구한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갑자기 세미나가 잡혀서 나대신 내 친구 보냈어. 남자애야.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소개팅이라고 생각해! 이 언니의 예기치 않은 깜짝 선물이다. 좋은 시간 보내!’
소개팅? 좋은 시간? 이걸 말이라고. 황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는 무심하게 신호음만 연결할 뿐이었다. 다시금 차를 되돌릴 수도 없고 1박 2일을 혼자 보내기도 겁이 났던 나는 일단 남자가 나와 있을 것이라는 포항터미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왔다.
“김수정씨?”
“아, 네.”
이 남자인가보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포항터미널에서 갑작스럽게 만난 남자라니.
“연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경상도 남자한테 관심이 많으시다고 에스코트 좀 잘하고 오라고 하던데요?”
“아. 연주가 그래요? 아. 뭐..”
연주 이 기집애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보다. 그리고 이 남자.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한 면이 있다.
“배 안고프세요? 포항 오셨으면 과메기 정도는 먹어줘야 되는데, 드셔보셨나 모르겠어요.”
“아. 한번인가? 자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제가 제대로 먹는 법 알려줄게요. 가요.”
그렇게 처음 본 남자와 처음 와본 곳에서 점심을 먹으러 앉아있다. 죽도시장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며 남자의 추천으로 들어온 집이다. 주문한 과메기가 나왔고 남자는 김과 과메기, 갖가지 채소들을 얹더니 ‘아’ 해보라고 했다. 괜찮다는 대도 자꾸만 ‘아’해보라고 했다. 쌈이 풀어진다나. 그렇게 수줍게 받아먹은 과메기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비리지도 않았고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어때요? 맛있죠?”
“네. 비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황금비율로 싸드려서 그래요.”
남자는 그러면서 싱긋 웃는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 일일 가이드로 일임한 남자를 따라 포항 이곳저곳을 다녔다. 남자는 경상도 남자답게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고 세심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수놓았다. 일출 명소인줄 알았는데 해가 저무는 모습도 아름다웠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이렇게 일일 가이드도 해주시고. 이제 그만 들어가 보세요.”
“뭘요. 저도 포항 여행 제대로 했는데요. 참. 내일 오전에 해돋이는 보시고 가셔야죠? 아침 일찍 여기로 나올게요. 해돋이 보고 가세요.”
“네? 아. 괜찮은데.”
“무슨 말씀이세요. 호미곶와서 일출 안보고 가면 여기 왔다고 명함도 못 내밀어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일 6시 10분까지 나오겠다며 내일 보자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호의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다음날. 약속했던 시간이 약 30분이 남았음에도 모든 준비를 끝냈다. 애꿎은 시계만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드디어 6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남자가 나와 있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코끝이 살짝 빨갛다.
남자는 곧 해가 뜬다며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일출 명소로 뛰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올랐다. ‘와.’ 속으로 감탄을 삼키고 있는데 남자가 말을 걸었다.
“멋있죠?”
“네. 멋있네요.”
“그럼, 나는 어때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줍게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이월드에 가는 날이다. 꼬박 한 달을 준비하고도 자꾸만 뭔가 아쉬워서 결국 어젯밤에 잠을 거의 자지 않고 작업에 몰두했다. 세수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눈 밑이 시커멓다.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는 머리를 매만지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데이트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단장은 해서 뭐하겠는가.
내 이름은 유현주, 스물세 살, 휴학 후 대학에서 알게 된 언니가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중. 하지만, 오늘의 직업은 젊은 예술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 시간이 오면 내가 항상 반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예를 전공할 생각은 없었다. 만드는 일은 그야말로 취미일 뿐 내 장래희망은 심리학자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틈날 때마다 심리학 관련 서적을 읽었고, 지금은 유명한 수도권 사립 대학교에서 심리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잠도 줄이고, 코피를 수십 번 쏟아가며 수험 생활을 견딘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다.
그러나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에도 변화는 없었다. 나는 틈만 나면 팔찌나 머리끈, 선물상자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자질구레하다고는 해도, 십 년 가까이 갈고 닦은 솜씨라 ‘예술 전공해도 되겠네!’라는 농담을 종종 듣기도 한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역시 아쉽기는 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우울한 날이면 어김없이 공예를 전공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코스터처럼, 내 안에서 심리학과 공예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언니가 자리를 비울 때면 틈틈이 공예품들을 만들곤 했는데, 단골로 가게에 드나들던 여고생들 중 하나가 여기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우와, 언니. 이것도 파는 거예요?”
“아, 아니요. 이건 제가 그냥 취미로 만드는 건데…….”
학교가 아닌 곳에서 칭찬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만들던 팔찌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건네주었는데, 다음 날 그 아이가 친구들을 더 데려왔다. 만드는 법을 알려 달라는 아이도 있었고, 그냥 여기서 팔면 안 되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그 때는 가게에 언니가 있어서, 자칫 곤란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얼굴로 언니의 표정을 살폈는데, 언니는 ‘그런 재주가 있으면 말을 해 주지 그랬어.’라며 웃었다. 알고 보니 언니도 학생 때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셨는데, 장사를 하시느라 그림을 그리지 못한 지 꽤 오래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로 내가 만든 팔찌를 진열장에 올리고, 그걸 팔아서 나오는 수익은 내 몫으로 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현주랑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어딘가 했더니 놀이공원이었다. 웬 놀이공원인가 하면서도 저녁 시간까지 유채꽃밭과 우방타워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해 질 무렵이 다 되어서 언니가 나를 데려간 곳이 바로 젊은 예술 거래소였다. 매주 토요일, 저녁 시간이 되면 이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프리마켓을 연다고 했다.
예술가들이라고 해서 굉장한 사람들만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 머리띠를 만들어 파는 사람, 나처럼 팔찌를 팔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언니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예술이란 게 뭐 별거 있겠어? 내가 만들어 낸 것을 남들이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예술가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 곳에서는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기억할만한 걸작을 남길 수는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무언가를 남길 수는 있었다. 젊은 예술가들의 거래소. 젊은 예술가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기분이 좋다.
묵직한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서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제법 예술가 같아 기분이 좋았다. 컨버스를 구겨 신고 집을 나섰다. 오늘 날씨도 맑음, 바람도 선선함. 모든 게 다 완벽하다. 나는 오늘, 젊은 예술가다.
문밖에서 부는 바람소리에 촛대의 불이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달빛이 환하게 현의 방을 비추는 야심한 시각이었지요.
“무릇 양반이라면 돈은 손으로 만지지 말고 쌀값을 직접 물어보아도 안 된다.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는 국부터 먹어서도 아니 된다.”
다리가 저려오고 눈꺼풀이 점점 감겨왔지만 아버지를 실망시킬 수 없었던 현은 꿋꿋하게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회마을에서 현의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현의 집안은 대대로 훌륭한 벼슬자리에 오른 유서 깊은 가문이었습니다. 그런 가문의 외아들인 현은 아버지와 가문의 대를 이을 귀한 증손인 것이지요.
아버지께서 침소에 드셨으나 현은 달빛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현은 이러한 양반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대한 답답함과 양반과 상민의 신분차이에 대한 위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현의 집에서 머슴으로 지내는 만복이가 살금살금 대문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독 야심한 밤 잦은 외출이 의심스럽던 만복이었습니다. 마음도 심란하고 마침 잠도 쉬이 오지 않던 현은 만복이의 뒤를 쫒기 시작하였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향하던 만복이의 발걸음이 멈추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일곱 명 정도의 동네 머슴들이 모여 있었고 각자 하나같이 희한한 모양의 탈을 쓰고는 중얼중얼 말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이보게 선비, 나는 사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양반이라오.”
“이보게 양반, 나는 오대부 육대부 집안의 뼈대 있는 선비라오.”
가만히 들어보니 양반과 선비들을 비꼬는 식의 놀이마당 인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재미있는 모양의 탈을 쓰고 있었지요.
마을의 머슴들이 모여 하나같이 양반과 파계승, 선비들을 비웃고 비꼬는 내용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에 대한 충격과 거기에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만복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현은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잠자리에 누웠으나 아까의 탈놀이가 잊히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아득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현은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만복이는 어김없이 대문으로 향하고 종종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였지요. 그 뒤를 조용히 밟던 현은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다다랐고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만복이는 자신들이 양반을 희롱하였다는 사실이 들켜 엄벌을 받을까 두려웠고 무리들도 자신들이 모시는 양반에 알려질까 두려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현은 뜻밖의 제안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 무리에 끼워주시오. 탈을 쓰고 놀이를 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오.”
어리둥절한 무리의 사람들과 만복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현은 단오하게 무리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자신이 양반에 대한 위선과 회의감을 털어놓고 이 무리들에게 양반에 대한 허와 실을 말하며 양반인 자신이 직접 탈놀이를 하여 더욱 사실적인 탈놀이가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습니다. 끝내 무리는 현을 받아들이게 되고 현의 얼굴에 맞는 양반탈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매일 무리들과 연습을 하던 현은 본격적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몇 회씩 놀이가 거듭될수록 현의 자신감은 날로 늘어나고 놀이판도 더욱 신명나고 재미있어 상민들 사이에 큰 입소문을 타면서 저잣거리의 큰 행사로 자리가 잡혔습니다.
처음에는 장단에 맞추어 어깨춤만 추며 몇 마디 대사로만 이루어졌던 탈놀이가 악기들이 늘어나 더욱 신명나고 대사들은 더욱 신랄해지며 구경꾼들도 함께 참여하는 큰 놀이마당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놀이판이 점점 커지면서 양반들의 귀에도 하나 둘씩 탈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양반들은 치욕스럽고 화가 치밀었지만 하나둘 씩 그 내용이 궁금하긴 하였습니다. 이로써 양반들은 서로 쉬쉬하며 탈놀이를 보기위해 저잣거리로 나가는 양반들도 생겨나게 되고, 현은 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지요. 다른 마을에서도 소문을 듣고 탈놀이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게 되고 지금도 양반탈을 쓴 현은 신명나는 놀음 한 판을 벌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산시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얼음을 나르며 생선들에게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 수산시장만의 비릿한 냄새가 이제는 익숙한 사람들은 손에 물이 안 묻는 날이 없다.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껴입어봐도 고무장갑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 때문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지런히 정돈된 생선들과 횟감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오늘 횟감 좋아요~ 사장님 한번 둘러보고 가셔.”
준영은 멀리서 엄마가 장사를 하시는 걸 보고만 있다. 손님이 엄마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나서야 엄마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여긴 또 뭐 하러 와. 공부하라니까. 이 좋은 옷에 비린내 배겠다.”
“오늘 장사 많이 했어? 추운데 얼른 접고 같이 들어가자.”
“무슨 소리, 너는 얼른 공부하고 나는 얼른 장사하고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그만 가봐. 엄마 일 해야 해.”
준영은 엄마를 주려고 가져온 손난로를 채 건네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준영은 노량진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이따금씩 엄마를 보러 수산시장에 오면 엄마는 옷에 냄새 밴다며 한사코 돌아가라고만 한다. 생선박스나 얼음은 덩치가 큰 장정들도 혼자 옮기가 힘든데 엄마는 번쩍번쩍 잘도 든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이런데서 나오는가 싶다.
엄마가 내색은 안 해도 내가 수산시장에 가면 옆 상회 아주머니들께 장차 나랏일을 할 우리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따금씩 공부하는 것이 지겨워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과 더 치열하게 생선을 파는 사람들. 어쩐지 엄마와 준영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손난로를 건네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엄마는 그날 심한 열감기에 걸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일을 나가시겠다며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시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모시고 시장으로 나갔다.
“너는 이제 올라가봐. 들어오지 말고.”
“오늘은 제가 도울게요. 엄마는 병원 다녀오세요.”
“병원은 무슨, 감기 가지고. 여기만 오면 다 낫는다. 여기가 엄마한테는 병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는 내심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으셨다. 오늘 하루는 공부 말고 엄마를 돕기로 하고 방수 앞치마에 장화, 고무장갑까지 끼며 생선들을 정리했다. 생선 종류가 하도 많아 어떤 게 어떤 것인지 듣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 생선 정말 싱싱해요. 어찌나 싱싱한지 펄떡거리는 거 잡다가 손목 부러질 뻔 했다니까요!”
“허허, 젊은 청년이 말도 잘하네. 키로에 얼마라고?”
“헤헤, 3만원만 주세요. 큰놈으로 골라 드릴 테니까 어서요.”
준영이 손님을 끌어오면 엄마가 회를 떴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손님에게 장차 나랏일을 할 사람이 골라준 생선이라며 쓸데없는 생색을 내셨다. 엄마는 빨간 코끝에 하얀 콧물이 맺힌 줄도 모른 채 생선 내장을 발라냈다.
잠시 손님이 뜸했다.
“엄마는 여기 이 냄새 그리고 생선 지겹지도 않아?”
엄마는 잠시 손난로를 만지작거리시더니 아니 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이 노량진이 지긋지긋해서 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엄마는 없다고?”
“지긋지긋 하지. 나라고 왜 아니겠어. 그래도 여기만큼 활기 넘치고 싱싱한 곳이 없어. 제철이면 제철 맞은 생선들이 파닥이고, 엄마는 이 비린내 흉이라고 생각 안 해. 나한테 주는 훈장이지 훈장.”
“근데 왜 나는 옷에 비린내 나니까 못 오게 해?”
“그게 너랑 나랑 같은가. 엄마는 여기가 일터고 너는 일터가 따로 있지 있으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 엄마 땜에 공부 하나도 못해서 어쩌냐. 곧 시험이라며.”
“하루 안했다고 떨어지는 실력이면 시험 봐도 그만이야. 오늘 공부보다 더 값진 공부 했는데 뭐.”
엄마는 껄껄 웃으셨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편이 뭉클했다.
비린내 가득하지만 싱싱함과 마주한 이곳. 노량진. 우리 모자에게 노량진은 그런 곳이다.
탁. 식탁에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심하고 매정하다. ‘크음’ 하고 남편이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에는 증발하다 남은 알코올의 잔해가 남아있었고 이내 공기 중에 산산이 부서졌다.
후루룩후루룩 소리만 공중에 맴돌았다.
오늘도 아침엔 청양고추 팍팍 들어간 콩나물국이다. 남편에게 술 좀 그만 마시고 몸 생각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도 마이동풍이다. 이런 잔소리가 오고 가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반복될 때면 어느 집이나 어느 가정이나 다 비슷한가 보다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킁킁, 이건 아빠의 냄새다. 아빠가 또 약주를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엄마가 한결같이 잔소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빠는 참 올곧은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빙자하여 모진 소리도 하지만 그건 다 아빠를 위한 거란다.
술이 좋으면 술이랑 함께 살라고 하던가, 술독에 빠진 사람도 당신만은 못할 거야라는 등의 말을 들어도 아빠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이다.
아빠는 내게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이다. 요즘은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딸이라면 그저 풀려버린 자물쇠처럼 무장해제인데 우리 아빠는 철저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언제 들었나 가물가물하다. 심지어 다른 애들은 늦은 시간이 되도록 딸이 귀가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는데, 우리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할 때에는 아빠 출근 시간에 차키를 두고 왔을 때 가지고 내려오라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 아빠가 무장해제가 되고 딸 바보가 되는 날. 바로 술을 한잔 하시고 들어오실 때이다.
“연주 자니? 아빠 왔어. 아빠가 왔는데 왜 나와 보지도 않아? 이리 와봐.”
“아휴, 술 냄새. 아빠 또 술이야?”
“아이고, 우리 연주 아직 애기네 애기야. 아빠 수염 까끌까끌 하지?”
“아, 따가워. 그리고 이것 좀 놔. 숨 막힌단 말이야.”
사실은 숨이 막혔던 것이 아니라 아빠의 품이 썩 어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빠는 지금 이런 모습을 다음날 아침 기억하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온 다음날이면 북어와 콩나물을 넣은 해장국을 끓여주신다. 특히 청양고추를 송송 썰고 고춧가루까지 팍팍 쳐 아주 매콤하고 칼칼하게 말이다. 내가 맵다고 고추를 쏙쏙 건져놓으면 아빠는 아빠그릇에 넣으라고 손짓을 한다.
엄마는 밥을 먹는 내내 아무 말도 없다. 아빠도 마른기침만 뱉을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숟가락으로 밥 한 숟갈 뜨고 엄마 눈치 한번. 국 한 숟갈 뜨고 아빠 눈치 한 번씩 번갈아가며 밥을 먹으면 엄마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괜히 나에게 호통을 치신다. 밥 먹는데 집중하라고. 치, 밥 먹는데 무슨 집중이람.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 반 지영이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영이네 아빠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지영이네 엄마는 우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안방 문을 배꼼 들여다보며 엄마가 우시는지 확인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빠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매콤하고 칼칼한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아침상을 차려드린 걸 보면 안다.
내가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과 같이.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재작년에 시집을 간 여동생의 전화였다.
“언니, 주말에 뭐해? 우리 슬비 좀 하루만 봐주면 안 될까? 한번만 더, 응?”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고선 내가 대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이 전화를 건 본 목적을 뒤따라 이야기 하는 동생이었다. 귀여운 조카 봐주는 것에 인색한 이모는 아니었지만 몇 년째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어쩐지 조금 얄미운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하기에는 어쩐지 조금 치졸한 이모가 될 것 같아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슬비는 엄마인 내 동생보다 어쩌면 나를 더 많이 따랐다. 여동생이라고 왜 배 아파 난 자기 자식이 안 예쁠까, 그저 나는 슬비에게 조금 더 약간의 집착이 섞인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꼭 저 아이에게서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싶은 사람처럼.
약속된 주말이 왔고 귀엽게 양 갈래를 하고 공주가 그려진 예쁜 원피스를 입은 슬비가 왔다. 이맘때 다른 아이 같으면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쓸 텐데 슬비는 이모인 내 품에 쏙 하고 안겼다. 그리고는 쿨하게 엄마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여동생은 모처럼 남편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듯했다. 슬비를 내게 맡겨두고는 미안했는지 작은 봉투를 건넸다. 맨입으로 맡겨도 서운했을 텐데 막상 이렇게 돈 봉투를 보니 어쩐지 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슬비 점심부터 좀 먹여줘 라는 말과 함께 동생네 부부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우리 슬비 무슨 반찬 해줄까? 점심 먹고 이모랑 뭐하고 놀지 생각해봐.”
“음, 나 치즈계란말이 먹고 싶어.”
이젠 제법 똑 부러지게 자신의 입장 혹은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고 대견한 마음이 들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들었다. 조만간 이모네 집에 가기 싫다고 똑 부러지게 제 엄마에게 말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슬비는 가방에 싸온 몇 가지 장난감을 바닥에 늘어놓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조잘조잘 혼자 떠드나 싶더니 이내 조용해져 불안한 마음에 거실 쪽으로 얼른 머리를 쏘옥 내밀어보니 무엇을 보는지 꽤나 집중을 한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텔레비전에서는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얼룩소에게 먹이도 주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슬비야 점심 먹자. 맛있는 돌돌 치즈계란말이가 왔어요~”
슬비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몸도 찌뿌듯해서 집에서 놀다가 잠깐 놀이터나 나갔다올까 했는데 슬비는 저곳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점심을 먹이고 차키를 챙겨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을 네비에 찍고 시동을 걸었다. 이래서 요맘때 아이들이 뭐든 다 들어주는 이모를 엄마보다 더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 간판이 보였다. 슬비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카시트에서 몸을 들썩였다. 벌써부터 시골냄새가 진하게 풍겨왔고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저 멀리서 체험장 관리하는 선생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머니, 우선 아이 손부터 깨끗이 씻게 하시고 오늘 체험 등록한 아이들과 함께 젖소 젖짜는 체험부터 진행할게요.”
어머니? 물론 이 사람 입장에서는 엄마처럼 보였겠지만 누구의 어머니, 엄마라는 말이 생소한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졌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손을 씻기는 데 웬일인지 눈물이 고였다. 조카를 데리고 온 것도 좋지만 정말 내 아이와 함께 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즐거워보였다. 또래 친구들과 젖소 먹이도 주고 쓰다듬기도 하며 도심에서 쉽게 체험하기 힘든 체험들을 하며 정서발달과 신체발달을 고루 키워나갔다. 드디어 오늘 체험의 하이라이트, 직접 만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 여동생은 슬비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들은 먹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 그 흔한 자장면도 안 먹이고 직접 만들어 준다나. 그런데 오늘 이렇게 하이라이트 순간을 목전에 두고 물러설 슬비가 아니었다. 평소에 떼를 잘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꼭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떼를 쓰기에 오늘 하루는 그냥 피자를 먹이기로 하며 체험을 이어나갔다.
우선 앞에서 선생님이 치즈에 대한 성분과 치즈 만드는 법을 간단히 설명했고 뒤따라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치즈를 만들었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받아다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소한 포테이토 치즈 피자를 만들었고 오븐에 15분 동안 구워내면 완성이었다. 하나 둘씩 저마다 만든 피자를 오븐 앞으로 가져갔다. 고사리 손으로 피자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리고 피자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 난 이모가 정말 좋아.”
대뜸 고백을 해오는 슬비에 웃으며 이모도 그렇노라고 말해주었다.
“난 정말이야. 치즈가 좋은 것처럼 이모도 그만큼 좋아.”
슬비는 자신이 정말 좋을 때 치즈에 비유해서 그 양을 말하곤 했다. 그러니 나는 슬비에게 엄청나게 큰 점수를 딴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 이모도 슬비 엄청 많이 좋아해.”
“이모, 나한테 동생이 생기더라도 나 많이 좋아해줘야 해.”
여기서 동생은 내가 낳을 아이를 말하는 듯했다. 내가 미쳐 대답을 하기전에 오븐에서 땡 하는 소리가 울렸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피자가 완성됐다. 슬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자를 보고 흥분하여 방방 뛰었다. 직접 만든 피자를 입속에 넣는 순간 치즈가 사르르 녹았다. 어쩐지 마음에 맺혔던 무언가도 함께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슬비는 고단했는지 곯아떨어졌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니 뒤이어 여동생내 내외도 도착했다.
“언니, 오늘 슬비가 말썽 안 부렸어? 매번 고마워. 그리고 이거.”
동생의 손에는 인진쑥과 함께 산부인과 진료카드가 들려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푸른 잎사귀가 넘실거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손에는 낯익은 지도와 어깨에는 큰 배낭을 짊어진 남자가 자동차에서 내렸습니다. 레오라는 이름의 요리사였지요. 레오는 세계를 돌며 수많은 요리를 연구하고 만들어왔지만, 한국요리만큼 레오의 입맛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한국요리를 연구하고 만들어왔지만 한국의 전통음식과는 오묘하게 다른 느낌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레오는 얼마 후 미국 열리는 세계적인 요리경연대회에서 당당히 자신이 만들어 낸 한국요리를 선보이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오래전 먹었던 한국 음식의 맛이 나지 않아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지요. 그렇게 고심만 하던 레오는 직접 한국에서 그 맛과 비결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레오는 이곳저곳을 물어물어 다니며 최고의 재료와 맛을 찾아 떠났습니다. 전국 팔도를 다 돌았지만 이렇다 할 만큼의 특별함을 찾지 못한 레오는 상심하여 돌아가려고 하다 우연히 예전 미국에서 만난 친구 태서의 고향인 정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밤이 되어도 화려한 불빛이 꺼지지 않고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레오는 이곳이라면 최고의 맛과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되찾았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술과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었고 한국요리보다 외국 요리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실망한 레오는 터덜터덜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았지요. 그곳은 온갖 나물들과 생활용품을 파는 작은 시장이었습니다. 파란 눈에 노란 머리를 가진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레오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 레오의 눈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시장 한편에서는 광대 분장을 한 사람이 가위를 두들기며 무엇인가를 팔고 또 다른 옆에는 저마다 한 그릇의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로 복잡한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밥 한 그릇을 쓱 내밀더니 한 아주머니께서 말했습니다.
“노란 머리 총각, 밥은 먹었나? 이거 한 그릇 먹고 가, 배고플 텐데”
아주머니는 레오가 말을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연신 웃는 모습으로 그릇을 내밀었지요.
레오도 낯선 사람과 문화가 어색하였지만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아주머니의 성의를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많은 사람 틈에 앉아 밥 한 숟가락을 떠먹었습니다. 별 볼 일 없다고 느낀 밥맛이 꿀맛처럼 느껴졌습니다. 밥에 들어간 재료를 살펴보니 흰 쌀밥과 나물 그리고 고추 양념을 한 간장 정도 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시장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시장을 찬찬히 둘러보니 아까 그 밥에 들어있던 나물도 보이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전도 보였습니다. 신이 나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각종 산에서 나오는 나물들을 팔았습니다. 나물을 사는 사람들은 큰 봉지를 손에 들고 있었고 나물을 파는 아주머니는 나물을 한 움큼 더 집더니 봉지에 담아주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은 소박하지만 하나같이 행복한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아까 먹은 밥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곤드레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봉지 하나 가득 담아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멀리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총각, 밥 맛있게 먹었다니 그것도 고맙고.
집에 가거든 우리나라 그리고 여기 정선 5일장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호호호”
레오가 돈을 내밀자 아주머니께서는 사양하시며 빙그레 웃고는 돈은 다음에 올 때 달라고 하였습니다.
레오는 서툴게 감사함을 전한 뒤 마을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 레오는 세계요리경연대회에서 한국인의 마음이라는 제목의 음식을 선보였습니다.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게 차려낸 밥상에는 곤드레 나물밥과 메밀부꾸미, 그리고 김치가 있었습니다. 다른 요리들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누구의 요리보다 특별했습니다.
지금도 레오의 마음에는 그날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웃으며 밥 한 그릇을 건네주던 아주머니의 미소 그리고 정선 5일장의 많은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 말입니다.
임의로 편성된 조의 명단들이 발표되자 강의실이 크게 술렁였다. 사진과에서 가장 불편한 사이로 알려진 네 명이 같은 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넷의 중심에 서 있다고 알려진 것이 바로 나였다.
과제는 한 가지 풍경을 두고 네 가지 관점에서의 사진을 찍어오라는 것이었다. 사진 찍을 장소를 정하기 위한 회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첫 모임부터 삐걱거리게 생겼다고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일어서려는데, 나머지 세 명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붙잡았다.
모두에게는 안됐지만, 전혀 잘못 짚은 일이었다. 나와 인성이가 잠시 헤어질 위기에 처하기는 했었지만, 그것도 옛날 일이다. 나와 정현이, 인성이, 민수. 지금 우리 넷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소문이 시작된 것은 인성이를 두고 내가 민수와 바람을 피운다는 데에서부터였다. 이 사건의 진상은 인성이와 크게 싸우고 우울해하는 내게 민수가 술을 사 주었으며, 이 또한 인성이가 민수에게 중재를 부탁해서였다는 것이었다.
정현이와 나는 1년 전에 잠깐 사귀다 헤어졌으나 지금은 서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게다가 정현이와 인성이, 민수는 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사랑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과거의 남자친구, 현재의 남자친구에 이어 미래의 남자친구까지 한 번에 끼고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막상 우리 네 사람은 앞으로 나설 용기도 없이 뒷말을 일삼는 사람들을 상대해서 뭐하냐는 공통된 생각이었다. 일단은 우리 자신에게 전혀 찔리는 부분이 없어 당당할 수 있었고, 일일이 해명하기도 귀찮은 일이었다.
당연히 촬영지를 정하는 문제도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내가 연천의 숨은 명소인 재인폭포를 추천했고, 모두가 내 안목을 믿는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남들에 비해 유달리 짧았던 회의 시간이 또 오해를 불러오겠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회의 시간을 늘리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역시 장소 선정은 미경이가 최고지.”
재인폭포 앞에 선 우리는 폭포의 절경에 한참 동안 할 말을 잃었다. 높이가 거의 삼십 미터에 이르는 스카이워크 전망대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보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산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그 구멍으로 누군가 한 줄기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계곡이라 하면 보통 아주 맑거나, 아니면 깊이 때문에 청록색을 띠고 있는 물을 상상하는데 이곳의 물은 녹색이라기보다는 하늘색에 가까웠다. 굳이 비유하자면 도자 박물관에나 놓여 있을 법한 고운 청자의 빛깔이었다. 평지가 내려앉아 생긴 협곡이라 그런지 폭포를 감싼 절벽이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는 네 가지 시선을 폭포와 폭포 위의 용소, 폭포 아래의 못, 그리고 주상절리로 나누었다. 두 명이 위에서, 두 명이 아래에서 찍기로 결정이 나자 정현이와 민수는 한사코 고집을 부려 나와 인성이를 폭포 아래로 내려 보낸다.
“아까 들어오는 길에 있던 안내판 봤어?”
내가 고개를 젓자 인성이가 안내판에 적혀 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재인폭포에 대한 전설은 두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 재인의 아내를 탐했던 원님이 재주를 부리게 하여 재인을 죽인 이야기. 둘째, 재인이 남의 아내를 탐하여 재주를 부리다 죽은 이야기. 전설과 문헌이 서로 달라 두 가지를 모두 기록해 두었단다. 어느 쪽이 맞는 이야기일까에 대해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곧 웃으며 그만두었다.
“시선의 차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