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내린 비가 그치고 이제 막 밝은 빛이 얼굴을 내미는 봄날입니다. 마당으로 민지가 작은 모종삽을 들고 나왔지요. 민지는 앞니 두 개가 빠진 개구쟁이 여덟 살입니다.
민지네 집은 경주에서도 아주 유명한 집이에요. 바로 민지의 할아버지 아니, 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쭉 경주에서 터를 잡고 대대로 경주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민지네 할아버지는 경주의 토박이로 터줏대감 할아버지로 불리고 계시지요.
어쩐 일인지 민지는 아침부터 소란입니다. 마당에서 이리저리 삽을 들고 아빠를 재촉하지요. 오늘은 아빠와 작은 귤나무를 심기로 한 모양입니다. 어디에 심으면 좋을지 고민을 하던 민지는 작은 텃밭 옆에 한 곳을 가리켰지요. 민지와 아빠는 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민지의 삽이 흙 속에 쑥 들어가자 덜거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민지는 조심스럽게 흙을 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자기 같은 물건이 땅속에 박혀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민지는 놀란 마음에 다급히 아빠를 불렀고 아빠는 조심스럽게 물건을 꺼내었습니다. 마당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자 민지의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마당에서 나온 청동으로 만든 접시를 살펴보았습니다.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감지하신 할아버지는 나라에 신고하셨고 민지네 집에 문화재 조사를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민지는 어리둥절하여 아빠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어요. 아빠는 민지를 무릎에 앉혀두고 집 마당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민지야. 우리가 발견한 청동 접시 말이야. 저번에 민지도 가봤던 박물관 있지?
그곳에 전시될 거야. 그곳에 우리 집 주소도 적힐 것이고 발견자로 민지 이름도 적힐 거야. 어때? 신기하지?”
유물 그리고 문화재에 큰 관심이 없던 민지는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그날로 아빠를 졸라 경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과 문화재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민지는 사실 경주가 신라 천 년 역사를 품고 있는 도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수학여행도 서울에서 경주로 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지요. 그런 민지가 아빠에게 먼저 경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을 구경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먼저 별을 관측하였다는 신라인들의 과학지식이 엿보인 첨성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분황사를 지나 오릉까지 구경하며 스탬프를 찍고 신라 시대의 과학의 집결지인 불국사와 석굴암까지 둘러보았습니다.
그렇게 신라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살아있는 천 년 역사의 고장 경주를 경험하고 온 민지는 그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습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역사공부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잠든 민지는 꿈에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민지가 빙그레 웃습니다. 꿈에서 신라인이라도 만난 것일까요? 아니면 마당에서 발견한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된 상황을 본 것일까요?
그동안 민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경주의 문화재와 역사에 대해 너무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소중한 의미를 알지 못한 것이었지요. 그런데 직접 유물을 발견하고 세계문화유산에 대해 깊이 느끼고 나니 자신이 경주에 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잠든 민지가 한 번 더 빙그레 웃습니다.
쏴아아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하면 학교에 지각을 할 시간이지만 애꿎은 모래알만 매만지고 있다. 걸어갈 때마다 도시락 가방에서 나는 달각달각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늘 억척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순댓국 장사만 벌써 20년째다. 늘 푹푹 찌는 큰 솥 앞에서 걸핏하면 대낮부터 술 한 잔 걸친 공사판 아저씨들 앞에서 걸걸한 말을 하며 지낸 세월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늘 도시락에 머릿고기와 순대 그리고 새우젓만 싸주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워 일부러 도시락을 놓고 간 적도 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신애는 점심시간이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일부러 놓고 간 것을 알아챘는지 복에 겨워서 저런다며 한 소리 했다.
모래알만 매만지던 나는 터덜터덜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국어시간이었고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배웠다. 모래톱이야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우의 이야기인지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 건우.
갯배를 끌고 나가 통학하는 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가진 섬마을에 사는 건우.
실향민들로 이루어진 아바이마을.
내가 살고 있는 아바이 마을은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적셔있는 마을로 어려웠던 전후시대를 살아오며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곳이었다.
부둣가로 올라오면 생선 비린내가 자욱했고 쪼그려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움푹 파인 마음의 주름을 부서지는 파도에 쓸어내리는 그런 곳.
나는 창밖에 부서지는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아슬아슬 하얀 거품에 스러지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모래성이다. 쏴아아 쏴아아 겁 없는 파도는 모래성으로 돌진하였고 결국 파도는 모래성을 집어삼켰다.
모래톱 이야기에서 건우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해 고향으로 가지 못한 설움이 남아있는 곳. 파도가 그 설움마저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무심하게 발로 도시락 가방을 톡 건드려본다.
‘달각’ 소리를 낸다.
윗동네에 사는 은서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왔다. 나란히 앉아 도시락 가방을 연다.
은서는 새하얀 쌀밥에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왔다. 내 반찬은 어김없이 머릿고기에 순대 그리고 새우젓일까.
어쩌면 나도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주지는 않았을까?
창밖의 갯배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신기한 듯 갯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갯배를 타고 오고간다. 신기한 듯 배를 타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 때문일까 어느 날 부턴가 갯배는 헤어진 연인들의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 되었고 짙은 녹색에서 희미한 푸른색의 느낌을 띄기도 했다.
반찬통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도시락 가방을 두고 갔던 날.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싫었던 건 엄마도 아니고 돼지 비린내도 아닌 ‘달각’소리였다는 것을.
그곳에서 복숭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퍽 힘든 일이었다. 도로변에는 복숭아밭이 있고, 봄이면 도화잎이 날렸으며, 여름이면 복숭아 축제가 열렸다. 그리고 우리는 폐교 운동장을 빌어 열리는 그 축제에서 맛볼 수 있는 복숭아 막걸리를 사다가 자취방에 쟁여두곤 했다. 복가난한 대학생들이었던 우리에게는 딱 그 만큼이 행복이었다. 복숭아향이나 복숭아 빛깔, 복숭아 맛까지.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복숭아에 빗대어 표현했으며, 특히 나는 복숭아를 닮은 너의 발그레한 두 뺨을 좋아했었다.
휘어진 가지 끝은 종종 울타리를 넘어왔다. 한밤중이면 우리는 술기운을 빌어, 그리고 세상 모든 대학생의 권리라는 패기를 빌어 복숭아 서리를 감행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가 서리한 복숭아들은 항상 시거나 떫었다. 내가 복숭아를 훔치는 이유는 혹시나 주인이 나타날까봐 잘 익은 복숭아처럼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네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지만, 너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울타리를 넘어 오게 놔둔 것들은 맛없는 복숭아라니까.”
“아무렴 어때.”
나는 정말로,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너는 금방 토라진 얼굴로 길가에 주저앉으며 맛없는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다. 다리를 까딱이며 맛없고, 조그맣고, 게다가 못생기기까지 한 복숭아를 오래오래, 아주 조금씩 먹어치웠다. 나는 그동안 모난 성격에, 키가 작고, 결코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네 옆모습을 조금씩 훔쳐보고 있었다. 딱 이 부분에서부터 나는 조금씩 혼란스러워진다. 너는 긴 머리를 하고 있던가, 안경을 쓰고 있었던가. 너는 나보다 어렸던가, 아니면 동갑내기였던가. 마침내 네가 복숭아씨를 퉤, 하고 뱉어냈을 때,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던 너의 복사뼈 언저리가 마치 곧 싹이 돋을 것처럼 신비롭게 보였던 것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어느 날 너는 갑작스레 사라져버렸다. 사고가 났다고 했던가, 아니면 병에 걸렸다고 했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휴학을 했다고 하던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거짓말처럼 덜 신경질적이며, 키가 더 크고, 더 예쁘장한 아이와 함께 아주 가끔씩 복숭아를 훔쳐 먹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졸업을 맞이한 나는 자연스레 그곳을 떠났다. 몇 년 동안 머무르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기념처럼 가지고 있던 빈 막걸리 병들을 내다 버렸으며,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 가득 담겨있던 것 중에는 분명 너와의 추억이 서린 물건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렴 어때. 짐정리는 생각보다 빨리 끝났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복숭아, 조치원 복숭아요!”
귀갓길에 트럭으로 복숭아를 내다 파는 노점 상인의 고함소리를 듣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무려 2만원 어치의 복숭아를 사 들고 돌아왔으며, 복숭아를 다 먹어치운 주말 즈음에는 조치원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타고 있었다. 복숭아가 생각보다 맛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복숭아씨들을 곧바로 내다버리지 않고 싱크대 한 구석에 모아두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그동안 두 번의 연애를 더 했고, 한 번의 이혼을 감행했으며, 첫 번째 이직을 앞두고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지쳐 있었고, 다시 말하자면 네가 보고 싶었다. 물론 대학교 캠퍼스에 간다 한들 그곳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저녁 즈음에야 학교 정문 앞에 하차했고, 절반 정도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후배들을 불러내어 자정이 넘도록 술을 마셨고, 급기야는 몇 년 새 더 견고해진 울타리의 귀퉁이를 부수고 복숭아밭으로 들어가 버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검거되지 않았던 복숭아서리범이 지금 밭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다.
‘알 만한 사람이 도대체 왜!’하는 성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어쩌면 그곳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들 중, 너의 복사뼈에서 자란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알 만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도 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나는 가끔 사람들의 발목 언저리를 내려다보곤 한다. 혹시나 낡은 슬리퍼 위로 드러났던 너의 바싹 마른 복사뼈, 금방이라도 싹이 돋아오를 것 같은 어리고 단단한, 못생긴 복사뼈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항상, 굽 높은 하이힐 위로 자리한 동그란 뼈들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모두 매끈하게 다듬어진 아름다운 모양이다. 나는 가끔씩 그것이 서럽다.
반만년의 무게를 담고 오랜 세월의 흐름은 무상한 듯 고요히 흐르는 푸른 한강 위에 돛단배가 유유히 흐른다. 노를 젓는 사공도 없이 뉘엿뉘엿 흘러가는 강물 따라 흘러내려 간다. 저 멀리 보이는 포구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푸른 한강에서는 한가롭게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강나루에는 신록이 짙어져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아차산의 푸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나는 아차산에 올라 광나루를 내려다본다. 언젠가는 이란 경치를 벗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작은 텃밭에서 상추, 고추, 가지 등을 가꾸면서 낚싯대 하나 등에 메고 패랭이 하나 쓰고 그저 느긋하게 낚시를 즐기고 싶다. 광나루에 앉아 낚시 던져놓고 그저 여유롭게 낮잠이나 자는 삶이 얼마나 한가하지만 여유로울까.
나는 현재의 최고 명문가인 안동 김씨의 후원을 받고 있다. 나는 그를 위해 그의 집인 청풍계(淸風溪)를 여러 번 그려줬다. 내가 그린 청풍계 그림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사람들은 신선의 솜씨라며 나를 칭송한다. 여기에 성상께서도 나를 후원해 주고 계신다. 나는 성상을 세제(世弟) 시절부터 그림 스승이었을 정도다. 하지만 나의 예술혼은 채워지지 않는다.
수십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림을 본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어찌 이런 그림을 단 3일 만에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사람의 솜씨가 아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자신이 사는 곳을 그려냈구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 마음을 뺏기고 어찌하면 나 역시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수없이 고민하고 수없이 그리기를 수십 년. 수백 장의 화선지에 검은 묵과 종이의 여백을 살려 수없이 그리고 찢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이곳 광나루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아차산과 한강이 어우러지는 아리따운 경치와 함께 이곳은 권문세가들의 별장이 있어 자연과 인간의 건축물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모습과 우리의 시대를 한 폭의 그림에 그리고 싶다. 마치 신선이 사는 몽유도원도처럼...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내가 사는 현재를 그리고 싶을 뿐이다. 아차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나루터에 묶인 두어 척 나룻배와 한강을 가로질러 쉴 새 없이 다니는 돛단배, 그리고 그 안에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가득 타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고 있다. 나는 그리고 싶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신선이 노니는 곳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해 나는 전통적 수묵화법이나 채색화를 나 나름대로 해석해 나만의 필묵법을 개발했다. 세간 사람들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고 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는 선비나 직업 화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겸재파 화법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나만의 화법으로 '광진'을 그리고 있다. 광진은 도성 안에서 살곶이다리를 거쳐 광진길을 따라 이르게 되는 강나루로, 여기서 배를 타야 강 건너 삼전도로 갈 수 있다. 이상향의 존재하지 않는 산수를 그리는 것이 아닌 실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산수를 하나의 붓으로 백색 화폭에 담아 꿈을 꾸는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의 나의 ‘광진’인 것이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뛴다네. 내가 이 합천 흙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네.
이 늙은 소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겠나?
때는 고종23년 때였지. 그때의 고려는 바람이 부는 등불 앞에 촛불과 같았다네. 몽골의 침입이 끊이질 않았고 전쟁 통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치를 떨었지.
끊임없는 약탈과 협박으로 백성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지. 왕실이 휘청거렸지만 무신들은 달랐다네. 끝까지 싸워 이기고자 하였지.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네. 끝이 보이지 않던 전쟁에 몽골군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을 게야. 그래서 그때의 고려의 힘과 정신으로 버텨가던 맥을 끊어버리려 했던 거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시커멓게 타는 것 같다고.
성벽만 공격하던 몽골군은 군사를 이끌고 대구 부인사로 향했다네. 그리고 그곳에 모셔두었던 초조대장경 판목을 불에 태워버렸어. 나라의 뿌리였고 백성들이 버티고 버티던 마지막 정신이 함께 불타버린 것과 같았다네. 당시 고려는 불교를 나라에 힘이라 믿었고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었다네. 그런데 그러한 대장경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만 셈이지.
백성들은 물론이고 고려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고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천리 밖 아니 만리 밖까지 새어나가, 문인들과 무인들은 혼란 속에 빠진 백성과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했다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도가 하나 있었지. 바로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고 다시금 민심을 끌어 모으기 위한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로 한게야. 하지만 팔만대장경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 계속된 전쟁 통에 대장경을 만들 재료도 부족했고 나무도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습도와 통풍이 잘 되는 곳에 터를 잡아야 했어. 그래서 이곳에 그 경건하고 조심스러운 팔만대장경 재건에 나섰다네.
부처의 말씀을 목판에 새겨 넣은 것으로 먼저 굵기가 40cm이상이 되고 곧은 나무를 베어 길게는 2년 정도 진을 빼야 한다네. 경판 하나 준비하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
그런 뒤 경판이 건조되어 비틀어지지 않도록 경판을 소금물에 담 궈 두었다가 건조를 해야 한다네. 그렇게 소금물에 삶고 찌며 온 정성을 다해야 했다네.
그렇게 판자가 만들어지면 정해진 두께에 맞게 판자를 다듬어 나가야 한다네. 그리고 경판을 새길 때에는 엄밀하고 정성스럽게 새겨야 했다네.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이 말이네. 이때에 경판을 작업한 스님들은 글자 한자 한자를 새길 때마다 절을 하였다네. 그리고 글자를 새겨 넣을 때에는 먹지도 자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지.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민심을 되돌릴 수 있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한 자 한 자를 새겨 내려갔다네.
한 획 한 획 지극히 간절한 믿음을 쏟아냈고 혼을 불어 넣었다네. 그렇게 판자에 모든 말씀을 새겨 넣었다네. 그렇게 새겨 넣은 판자가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경판에 옻칠을 했다네. 목각판에 옻칠을 한 것은 팔만대장경이 유일하였지.
그렇게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단순히 부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이 아니었다네. 고려의 혼과 총력이 담겨있고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마음과 숭고한 믿음이 함께 불어넣어진 것이지.
어떤가. 무려 5천 2백만 자가 넘는 글자를 목판에 일일이 새겨 넣었을 때의 심정이. 느껴지는가.
지금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그때 외부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우리 민족의 혼을 하나로 이어주던 그 염원을 헤아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더군.
그저 팔만대장경과 함께 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에 답이 없는 메아리만 고요하게 울릴 뿐이지.
한참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친구가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또 그런 거 보고 있어?”
“아,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녀라.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난 이게 제일 재미있더라.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게 한이야, 정말.”
내가 보고 있던 건 다름 아닌 고래 사진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나의 고래 사랑은 쭉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해서 고래의 생태와 습성 같은 것들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고래의 사진을 보는 것이 좋았다.
아쿠아리움에 가면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들도 귀엽지만, 뼈 하나가 사람의 키만큼 큰 고래들이 더 멋지다. 포유류들 중 몸집이 가장 크다는 고래.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 위를 지날 때면, 저 아래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상상을 해 보곤 한다. 흰긴수염고래처럼 거대한 고래를 만난다면, 나는 아마 기뻐서 기절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보다 조금 작은 긴수염고래도 좋고, 점박이가 귀여운 범고래도 좋다. 다큐멘터리 채널에 고래가 나올 때마다,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래나 공룡은 어렸을 때나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이 많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이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고래는 우리 학교 건물만큼이나 커다란 몸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육중한 몸을 움직여 바다 속을 거니는 것이다. 학교가 물속을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 해 보라! 놀랍지 않은가.
“나 어제 텔레비전 보는데 네가 정말 좋아할만한 곳 나오더라.”
자리에 앉자마자 고래 얘기를 시작하려는 내 말을 지영이가 뚝 끊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미 고래변태라는 해괴한 별명을 얻은 나는 한 번 고래 얘기를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몰랐다.
“울산에 장생포 고래 박물관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 가면 4D 영상 체험도 할 수 있고 고래 뼈도 볼 수 있대. 왜, 그 공룡 전시회처럼.”
나는 지영이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지영이를 꼭 끌어안고 말았다. 당장 가자며 방방 뛰며 조르자, 참다못한 지영이가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지체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주말에 바로 친구를 끌고 울산까지 왔다.
“정말, 너한테 그런 말을 한 내가 바보지.”
투덜대는 지영이에게는 울산의 명물이라는 치즈 맛 고래 빵 열 개짜리 한 세트를 사 주었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내가 가끔 꾸는 고래 꿈처럼 달달한 맛이 났다.
고래 박물관답게 정원의 조형물들도 모두 고래 모양이어서 여기저기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동그래져서 정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지영이가 고래 모양을 한 매표소 앞의 황동상에서 멈추어 섰다. 황동상은 돌고래와 입을 맞추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래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인지, 아니면 소녀가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지영이가 무릎을 탁 쳤다,
“<돌고래의 요정 티코>! 우리 어렸을 때 방영됐던 만화!”
“그런데 만화에 나오는 건 돌고래가 아니라 범고래였어!”
내 말에 지영이가 깔깔 웃었다. 물론 나도 그 만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이십 대 중반 줄에 들어서고 있는 또래들 중, 이 만화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아이가 몇 명이나 될까. 만화는 범고래랑 친구인 소녀가 전설의 황금고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었는데, 어린 마음에 범고래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어쩌면 내가 고래를 좋아하게 된 것이 이 만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결국 고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래가 나오는 영화, 고래가 나오는 소설, 고래가 나오는 만화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끊이지가 않았다. 박물관에 들어서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보았다.
소녀와 함께 헤엄치던 고래는 영화 <그랑 블루>의 포스터 속 달빛 아래에서 뛰어오르는 고래와도 닮았고, 황금고래는 <피노키오>에 나오는 거대한 고래와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꿈꾸는 고래의 모습은, 딱 이 귀여운 고래 빵을 수만 배로 부풀려 놓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전 세계 사람들은 태어나서 한 번쯤, 고래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 좀 떨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줄기차게 보던 얼굴들이기는 하나, 기혼자 다섯 명이 한꺼번에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늦게 하는 결혼이 대세라는데 내 친구 녀석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스물다섯 먹던 해부터 줄기차게 시집을 갔다. 스물다섯,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 이렇게. 다들 아홉수를 피하려고 작정을 한 건지 마의 스물아홉 이전에 전부 유부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뒤 나 혼자 독신녀로 남아 저 독한 유부녀들을 상대했다. 친구들은 남편 얘기, 아이 얘기, 아니면 또 다른 애인 얘기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뭐 일거리 말고는 할 만한 얘기도 없었다. 남자아이돌들을 좋아하긴 하나, 친구 녀석들한테 얘기해봤다 정신 못 차렸다며 잔소리나 들을 테고. 그래서 친구들이 수다 떨 동안 조용히 쭈그린 채로 음식에 심취하거나,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아, 가끔 야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집중해서 들었다.
그러다 서른다섯 겨울, 드디어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됐다. 상대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회사원. 평소 핥던 아이돌처럼 얼굴이 잘나지도, 몸매가 뛰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말이 통하고 편안해서 살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무렵, 친구 녀석들이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동준씨, 기력은 좀 있어?”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친구 녀석들은 서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만 봤다. 그 중 미경이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아니, 너네 애기도 낳을 거라면서 신랑 기운이 좋아야 2세를 낳지.”
순간 얼굴이 좀 붉어졌지만, 미경이 말이 맞다 싶었다. 우린 만나기만하면 서로 죽겠다며 피로를 토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젖힌 채 잠들기 일쑤였다. 이래가지고 어디 자식 보겠나 싶어 걱정이 됐다. 그때 혜진이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을 열었다.
“우리 다음 주에 광양에 어른 물 받으러 갈 건데, 너도 갈래?”
“어른물이라니, 물중에 어린 물도 있고 늙은 물도 있나?”
“야야,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지. 광양에 고로쇠물이 유명하다잖아. 미경이 남편이랑 우리 남편이 요즘 영 골골거리고 지루해서 우리 다음 주에 물 받으러 갈 거야. 고로쇠물이 기력 회복에도 좋고 비뇨기 계통에도 아주 좋다더라고. 너도 갈래?”
결혼준비도 중요하지만, 결혼 후의 생활을 생각하니 갑갑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그이나 나나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신혼도 즐기고 아이도 가지려면 역시 몸관리가 필수지! 가구랑 전자제품 들어오는 날짜를 어찌저찌 계산하다보니, 결혼 일주일 전 딱 반나절 정도 시간이 비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로 광양으로 향했다.
약수통 하나 들고 룰루랄라 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다. 왜 난 백운산 중턱을 오르고 있는가! 왜 아무도 나에게 산으로 올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단 말인가! 물먹으러 사람들이 이런 산중까지 올라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정도 걸어 들어가니 평지와 함께 고로쇠나무들이 등장했다. 나무마다 하얀색 물통이 꽂혀 있었고, 나무에 꽂혀 있는 호스를 통해 고로쇠 물이 한 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겉보기엔 그냥 맑은 물인데 이거 한 말에 오만 원씩이나 한단말야? 아깝다. 이 돈이면 족발을 아주 그냥 원 없이 먹을 수 있는데.”
“아서라, 너는 그게 예비 신부가 할 말이냐? 이리 와서 어른 물 한 잔 마셔봐. 고로쇠 물로 끓인 백숙도 죽여줘.”
혜진이의 닦달에 고로쇠 물 한 모금 먹고, 백숙 한 점 뜯었다. 신기하게도 물이 달았다.
“야, 어른 물 생각보다 달고 맛난다. 어른은 쓴물만 먹고 살아야 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물 먹어도 되는 거야? 어른 좋네.”
그 후로도 나는 한참동안 닭 한 점 뜯고 고로쇠 물 마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처음에는 한두 잔만 주고, 동준씨 갖다 줄 생각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약수통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동준씨만 기력 차리란 법 있나? 애는 내가 낳는 데 내 몸부터 챙겨야지. 고로쇠 물에 푹 빠져 입맛을 다시는 날 보고 미경이가 말했다.
“지금 많이 마셔 둬. 너 이제 시집가고 나면 쓴 물 배터지게 먹을 테니까.”
나는 약수통 바닥에 남은 고로쇠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잔에 부었다. 그리고 잔 바닥까지 핥아 마셨다. 캬, 어른 물 달다.
해운대에 내려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갈수록 날짜 세는 데에 무심해지고 있으니, 오늘 날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쓰는 시간을, 내게 남겨진 시간을 세는 것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꽤 인지도가 있다. 추억을 남기려 내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꼭 배경으로 노을 진 바다를 함께 그려준다. 그것도 붉은 빛이 아니라 노란 빛깔로 노을 져 가는 바다를 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서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여기에는 나만 알고 있는 사연이 있다.
무작정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운대로 내려왔다. 집안의 반대가 심하여, 어렵게 들어간 미술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하고 경영을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을 떠나던 날,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꼭 안아주셨다.
“넌 어디 가서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를 더 붙잡지 못하고 이 말만을 전하실 때의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나는 아직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성공하겠다는 막연한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부산 쪽에 살고 있는 친구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려 주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작 몇 시간 뒤에 해운대에 닿을 수 있었으나, 해변에서 캐리커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내게 쉬이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무턱대고 사람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아쿠아리움 앞에 앉아 자리를 폈다가 싸움이 붙을 뻔한 적도 있었다.
어느 흐린 날, 백사장 끝까지 밀려난 나는 그 날의 장사를 포기하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집을 떠나면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제일 먼저 그리워진다더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지금쯤 뭘 하고 계실까. 분명 비어있는 내 방에 들어가 내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시고 계실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꽤 멀리까지 와 버렸다. 친구들과 몇 번 놀러 온 적이 있어 해운대 번화가의 지리는 꽤 잘 아는 편이었지만, 해수욕장을 벗어난 적은 없었다. 작은 목조계단이 보이고, 어느 새 동백섬 입구를 마주하게 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동백섬으로 들어갔다.
앞길이 깜깜할 때 바다를 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망망대해 앞에 서 있으면 내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절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순수 미술을 전공하겠다는 사람이 이만 원을 받고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기분만 우울해지는 것을 괜히 올라왔다고 생각하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 때, 내 앞에 인어공주가 나타났다.
바위 위에 올라앉은 그녀는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대신, 한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발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손에는 구슬이 하나 들려 있고, 옷자락 아래로는 물고기의 꼬리가 숨겨져 있다. 무슨 연유인가 하니, 이 공주의 외할머니의 나라는 바다 아래의 수정국이며, 어머니의 나라는 바다 건너 나란다국이라 하였다. 공주가 이 동백섬에 시집을 와서 왕비로 살다가 두 나라를 몹시 그리워 하니, 그녀가 가진 황옥에 달 밝은 밤이면 두 나라가 비쳤다고 한다.
나는 청동상으로 만들어진 이 인어공주의 모습에서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때마침 해가 저물기 시작했는데, 흐린 날의 일몰은 새빨간 홍옥이 아닌 노오란 황옥 빛깔이었고, 그 공주의 이름도 모국의 이름을 따서 황옥이라 하였다. 황옥 공주의 쓸쓸한 등 위로 노랗게 타는 노을빛이 내리니, 나는 그때야 이 바다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운대 앞바다가 아닌, 고향을 그리워하는 황옥 공주가 앉아 있는 동백섬 앞바다를 말이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나는 그날에서야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이 핑 돌았지만, 쉽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가로서 당당하게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는 그림마다 노랗게 타는 노을을 그려 넣었다.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펴자 다른 그림쟁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하루하루, 느리지만 차근차근 내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렀다.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이면, 가끔 황옥 공주 옆에 가 앉아 함께 황옥을 들여다본다. 그녀의 황옥에는 가끔 우리 집이 비치곤 한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 이제는 내가 되려 위로를 건넨다. 돌아갈 곳이, 그리워 할 곳이 있기에 바다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겠느냐고.